세인트 클레어 · 마켓 인텔리전스 | 2026년 7월
핵심 요약
한국 기업의 리더십은 철저히 수직적이다. 지식도 권위도 오직 연차라는 하나의 사다리를 따라 위아래로만 오간다. 이 방식은 한 세대의 기업을 효율적으로 이끌었지만, 국경 밖으로 나가는 순간 힘을 잃는다. 사람을 성과로 평가하는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사람을 따르게 만들던 방식이 더는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같은 문제가 조직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가장 중요한 기술이 조직에서 가장 낮은 자리, 곧 막내의 손에 쥐어져 있어서다. 우리가 지켜본 현장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회사 대표에게 국경을 넘는 일은 곧 리더십을 처음부터 새로 세워야 하는 순간이고, 한국 팀에 투자하는 쪽이 던져야 할 질문도 분명하다. 국내에서 통하던 그 결속이, 해외에 나가서도 과연 그대로 살아남을 것인가.
수직으로 흐르는 권위
한 세대 동안 한국 기업을 지탱한 것은 익숙한 실무 능력이었다. 보고서를 짜고, 결재를 올리고, 거래처를 트는 요령 같은 것들이다. 이런 지식은 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려주었고, 그 권한을 쥔 쪽은 언제나 연차였다. 가르치는 일이 윗사람의 몫이었던 만큼, 그 대가로 아랫사람의 깍듯한 태도가 돌아왔다. 권위도 같은 방식으로 연차라는 사다리를 따라 위로만 쌓였다. 법인카드로 밥을 사고 술잔을 채우며 관계를 다진 선배에게 충성이 모였고, 그 충성이 곧 그의 권위가 됐다.
이것은 수직적인 체계이며, 비교문화 연구도 그 구조를 뚜렷이 보여준다. 한 문화가 위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를 나타내는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권력 거리 지수에서 한국은 60점으로, 독일(35점)과 미국(40점)을 크게 웃돈다. 에린 마이어(Erin Meyer)가 2014년 펴낸 문화별 리더십 지도 역시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위계가 강한 쪽 끝에 둔다. 수치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을지 모른다. 쉽게 말해, 한국 회사에서 상사의 의견에 대고 「그건 틀렸습니다, 이렇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정면으로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그 어려움이 수직 구조의 실체다. 이 방식은 산업화가 팽창하던 30년 동안 복잡한 조직을 무리 없이 이끌었고, 지금도 한국 안에서는 꽤 잘 통한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방식이다.
물론 모든 한국 조직이 이렇다는 뜻은 아니다. 스타트업일수록, 특히 작고 젊은 조직일수록 이런 수직성은 옅어지고, 한국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다만 아직은 대다수 조직이 해외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수직적이고, 문제는 바로 그 수직적 습관을 그대로 안고 국경을 넘는 팀에서 터진다.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 지식
그런데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기술은 늘 반대 방향, 곧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다. 오늘날의 AI가 그 가장 최근 사례일 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스프레드시트도 한때는 낯선 신문물이었고, 그 시절 컴퓨터를 끌 줄 몰라 모니터에 메모지를 붙여 두던 상사를 가르친 사람도 결국 기계를 잘 다루는 젊은 직원이었다. 새로운 도구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것을 가장 빨리 익힌 사람의 손에서 먼저 무르익는 법이고, 오늘 그 손은 막내의 것이다.
한국 사무실에서 이제는 흔한 장면이다. 테크에 능한 젊은 직원 하나가 주말과 퇴근 후 회사 시간 밖에서 혼자 익혀, 자기 업무를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 주는 AI 프롬프트를 완성했다. 동료들이 그것을 탐내지만, 정작 그 프롬프트가 가장 아쉬운 사람은 다름 아닌 상사다. 그런데 바로 그 상사가 가장 난처하다. 자기부터 그 직원만큼 AI를 다루지 못하니,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을 시킬 명분이 없어서다. 결국 그 직원은 결과물을 제 것이라 여기고 공유를 거절한다. 스프레드시트 시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 있다. 이제 막내는 자기가 쥔 것이 얼마나 값진지 정확히 알기에, 좀처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상사가 기댈 카드는 둘뿐이다. 명령, 아니면 보상. 그러나 둘 다 소용이 없다. 새 도구를 다루는 솜씨는 대체로 말로 옮기기 어려운 암묵지(tacit knowledge)여서, 노나카 이쿠지로(Ikujiro Nonaka)와 다케우치 히로타카(Hirotaka Takeuchi)가 1995년에 밝혔듯 지시만으로는 전해지지 않고 함께 일하는 경험 속에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지로 받아 낸 프롬프트는 마지못해 건네질 뿐, 다음번엔 더 깊이 숨는다. 기업 안에서 좋은 방법이 왜 잘 퍼지지 않는지 분석한 가브리엘 슐란스키(Gabriel Szulanski)의 1996년 연구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걸림돌은 동기보다 지식 그 자체, 곧 받는 사람의 이해 역량과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었다. 요컨대 돈으로 산 협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의 한계가 바로 여기이고, 그 상사는 이미 그 벽 앞에 서 있다. 흐름은 거꾸로 뒤집혔지만, 문제의 뿌리는 여전히 수직 구조에 있다.
사다리가 없는 시장
국내에서 대표가 겪는 어려움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것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국경 밖으로 나가면 문제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오르내릴 수직의 사다리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를 따라 베를린으로 가 보자. 새 사무실에서도 그는 서울에서 하던 그대로 팀을 이끈다. 회식을 열고, 법인카드를 긁고, 늦게까지 남아 같은 헌신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독일인 팀장은 정중하고 유능하지만 6시면 칼같이 퇴근하고, 상사의 연차에 빚진 것도, 술자리에서 갚을 마음의 빚도 없다. 서울에서 권위를 사들이던 방식이 이곳에서는 한 푼어치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이 벽을 이미 한 번 만났다. 프롬프트를 내주지 않던 그 젊은 직원이 바로 그 벽이었다. 다만 국내에서는 위아래 질서가 거꾸로 뒤집혔을 뿐이지만, 이곳에는 위아래라는 것 자체가 없다.
이곳은 애초에 조직이 돌아가는 원리가 다르다. 더 수평적이고 성과로 움직이며 권한이 여러 곳에 나뉜 조직에서, 지식은 위아래로 내려오기보다 옆으로 오간다. 동료에서 동료로, 부서에서 부서로 건너갈 뿐이다. 게다가 대표에게 가장 절실한 것, 즉 현지 시장과 규제와 고객을 읽는 감각은 그의 팀원들에게 흩어져 있어서, 옆으로 오가지 않으면 아예 그에게 닿지 않는다. 다국적 기업의 지식 이동을 분석한 아닐 굽타(Anil Gupta)와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의 2000년 연구도, 해외 자회사를 지탱하는 지식은 위에서 내려오는 만큼이나 옆에서 옆으로 오간다고 밝혔다. 위아래로만 사람을 움직여 온 대표에게, 이 시장은 잡을 손잡이를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한국 팀을 보는 투자자의 판단은 한층 까다로워진다. 국내에서 눈에 보이던 결속이, 사실은 수직 체계가 만든 착시일 수 있어서다. 아랫사람의 깍듯함이 단합처럼, 높은 연차가 장악력처럼 보이는 것이다. 서울에서 빈틈없이 통솔되던 팀도, 그 수직 질서가 사라지는 순간 얼마든지 흩어질 수 있다. 그래서 실사에서 던질 질문은 겉보기보다 훨씬 날카롭다. 지금 눈앞의 결속 가운데 과연 얼마가 해외에서도 살아남을 것인가.
리더십을 다시 세우는 일
동료들이 스스로 지식을 나누도록 이끌어 그 지식을 옆으로 퍼뜨리는 힘을, 경영학에서는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라 부른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James MacGregor Burns)는 1978년 이를 두고 리더와 구성원이 「서로를 더 높은 동기와 도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관계라 했고, 버나드 배스(Bernard Bass)는 1985년 여기에 국경을 넘을 때 특히 중요한 요소를 하나 더했다. 집단을 감독하기보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키우는 ‘개별적 배려’다. 결국 해외에서 대표가 할 일은 자기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다. 새 기술을 쥔 직원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가 동료를 가르치는 자리에 세우며, 혼자 끌어안고 있던 노하우를 팀 전체의 자산으로 바꿔 놓는 것. 누가 다그치기 전에, 모두가 자기 지식을 자연스럽게 꺼내 놓는 분위기를 먼저 만드는 일이다.
투자 관점에서 내릴 결론은 분명하다. 연차에 기댄 권위는 국내에서는 강력한 자산이지만, 국경 밖으로 나가면 그 힘을 거의 잃는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확장 계획과 실사는 그 권위가 해외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처럼 값을 매긴다. 그래서 성공하는 대표는 국경을 넘는 순간을, 기존 리더십을 옮겨 놓기보다 처음부터 새로 세우는 기회로 받아들인다. 지금 이 시대에 권위 있는 리더십은 아랫사람의 기술을 먼저 알아보고 그를 키워 내는 데서 나온다. 찍어 누르는 힘으로 세운 권위는 이제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리더가 살아남고 진화하는 길이다. 그러니 어떤 해외 진출 팀에든 던질 질문은 결국 하나다. 그 리더십이 국경을 넘어서도 통하는가. 수직적인 조직이 수평적인 시장과 만날 때, 솔직한 답은 대체로 ‘통하지 않는다’이다. 끝내 성장하는 대표는 그 위험을 남보다 먼저 끌어안는 사람, 시장이 혹독하게 가르치기 전에 새로운 리더십을 스스로 먼저 익히는 사람이다.
참고 자료
홉스테드(Geert Hofstede), 『Culture’s Consequences: Comparing Values, Behaviors, Institutions and Organizations Across Nations』, 2판 (Sage, 2001). 국가별 권력 거리 점수는 Hofstede Insights 국가 비교 도구 기준.
에린 마이어(Erin Meyer), 『The Culture Map: Breaking Through the Invisible Boundaries of Global Business』 (PublicAffairs, 2014) — ‘Leading’ 척도.
노나카 이쿠지로·다케우치 히로타카(Ikujiro Nonaka & Hirotaka Takeuchi),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 암묵지·형식지와 SECI 모델.
가브리엘 슐란스키(Gabriel Szulanski), “Exploring Internal Stickiness: Impediments to the Transfer of Best Practice within the Firm,”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17, Winter Special Issue (1996): 27–43.
아닐 굽타·비제이 고빈다라잔(Anil K. Gupta & Vijay Govindarajan), “Knowledge Flows within Multinational Corporations,”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21, no. 4 (2000): 473–496.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James MacGregor Burns), 『Leadership』 (Harper & Row, 1978).
버나드 배스(Bernard Bass), 『Leadership and Performance Beyond Expectations』 (Free Press, 1985).
세인트 클레어 유럽–한국 회랑 자문 경험, 2016–2026.
고지: 이 글은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한다. 투자 자문이나 사업 자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결정은 독자적 조사와 자격을 갖춘 자문가의 상담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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