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int Clair Capital · 그라운드 트루스 | 2026년 7월
핵심 요약
지난 5년간 한국 중소벤처기업부가 스타트업 부문에 투입한 공적 예산은 100억 달러가 넘는다. 여기에 한국벤처투자(KVIC) 모태펀드가 누적 약 10조 원(현재 환율로 약 67억 달러)을 별도로 집행했고, 모태펀드 출자는 2026년에도 이어진다. 자금 규모로 보나 인재 밀도로 보나 산업의 폭으로 보나,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된 스타트업 시장 축에 든다. 정작 부족했던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은 계약 관행과 LP 평가 방식, 이사회 거버넌스 규범, 국제 기준에 맞는 회수 인프라였다. 한국 스타트업의 연간 수출은 2017년보다 9배로 늘었지만, 업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1.3%에 그친다. 새 유니콘이 생겨나는 속도는 보고서 자체 집계로도 이 자금이 계속 흘러드는 동안 오히려 꺾였다. 베테랑 VC 박희덕 대표는 정밀 타격이 필요한 자리에 한국의 정책이 융단폭격으로 대응해 왔다고 진단한다. 싱가포르의 파빌리온캐피털(Pavilion Capital)은 한국 모태펀드와 엇비슷한 규모의 자본을 집행하고도 세계가 인정하는 기관 투자자로 올라섰다. 같은 규모의 한국 모태펀드는 끝내 그러지 못했다.
100억 달러 쏟았지만, 이제 예산 절반이 융자다
지난 5년간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 스타트업 부문에 투입한 공적 예산은 100억 달러를 웃돈다. Global Entrepreneurs Association과 The Garrison이 함께 펴낸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South Korean Startup Ecosystem Report)』는 이 액수를 가늠할 잣대 하나를 제시한다. 100억 달러가 한국 유니콘 열 곳의 기업가치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벤처 지원이라기보다 산업 정책에 가까운 크기다.
여기에 정부의 대표 벤처 자금 창구인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가 겹친다. 모태펀드는 누적 약 10조 원(현재 환율로 약 67억 달러)을 집행했고, 정례 출자 사이클은 2026년에도 새 벤처펀드를 키우기 위해 돌아간다. 정부 예산이든 모태펀드 출자든 창구가 다를 뿐, 같은 5년 동안 똑같이 수십억 달러대로 집행된 자금이다.
돈은 양만큼이나 성격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 초기 생존책으로 2022년부터 중기부 스타트업 예산에 편입된 융자성 자금은 이제 연간 총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사업화 보조금 비중은 그만큼 줄었고, 연구개발 자금 비중은 2022년 크게 낮아졌다가 이후 일부 회복됐다. 박희덕 대표는 이런 자금 구성을 「은행식 사고」라 부른다. 손실을 견뎌야 하는 자산군에 원금 회수와 상환 규율을 앞세우는, 은행 여신의 습성을 그대로 들여왔다는 진단이다. 융자성 자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 스타트업 예산은, 겉으로 드러난 숫자와 무관하게 구조상 손실을 감내하는 투자자보다 대출 기관에 가깝게 움직인다.
AI 특허 1위에 팁스 10.4배, 규모는 키웠다
전환점은 2017년이었다. 창업자 일가에 연대 책임을 지우던 연대보증제가 폐지되면서, 창업이 비로소 하나의 진로로 자리 잡았다. 국내외 자본은 그렇게 늘어난 창업 인재를 기꺼이 뒷받침했다. 자금 투입은 해가 갈수록 늘었고, 프리시드·시드·성장 단계마다 정부 프로그램이 겹겹이 쌓였다. 창업사관학교와 팁스(TIPS), 그 아래 프리팁스·포스트팁스·딥테크팁스, 그리고 크고 작은 지역·업종별 지원책이 층층이 더해졌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저마다 성과를 냈다. 정부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성공 사례인 팁스는 10년간 투입 예산의 10.4배에 이르는 후속 투자를 끌어냈다. 팁스를 거친 약 3,200개 기업의 기업가치를 합치면 88조 원에 이르고, 운영 기관도 2013년 5곳에서 100곳 넘게 늘었다. 유니콘이 나오는 속도는 2000년대와 2010년대 대부분 뜸하다가 2021~2022년 이커머스·뷰티·게임을 중심으로 크게 뛰었다. 같은 기간 한국 스타트업의 연간 수출은 2017년보다 9배로 늘었고, 화장품·전자·반도체 장비의 해외 판매가 그 성장을 이끌었다. 10년 전만 해도 해외 매출이 거의 없던 업종치고는 그 자체로 실질적인 수출 성과다.
국제 비교의 잣대로 보면, 이 흐름은 한국의 위상까지 바꿔 놓았다. Startup Genome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는 서울에 펀딩과 인재·지식 두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데, 둘 다 공공 자본과 공교육 인프라에 곧바로 좌우되는 지표다. 실제로 한국은 2023년 기준 인구당 AI 특허 등록 건수에서 세계 1위, 지난 10년 증가 속도로도 세계 8위이며, 기술 인재의 밀도 또한 국제적으로 보기 드문 수준이다. AI·바이오·반도체·우주·양자 5개 분야를 아우른 25개 주요국 기술 경쟁력 종합 순위에서도 한국은 5개 가운데 4개 분야에서 상위 10위 안에 든다. 웬만한 중견 경제권은 넘보기 어려운 폭이다.
‘벤처 4대 강국’ 내걸었지만, 새 유니콘은 뜸해졌다
정부는 그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중기부는 2025년 12월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30년까지 유니콘·데카콘 50곳과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 곳을 목표로 제시했다. 규모로 세계 벤처를 이끄는 나라의 대열에 서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지금의 순위는 그 야심보다 겸손하다. StartupBlink의 국가 비교만 봐도 한국은 일본·덴마크·인도와 같은 구간에 놓여, 선두 4개국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순위가 더디게 움직이는 데다, 그 바탕이 된 투자마저 제도가 무르익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보면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셈이다. 규모와 위상은 별개의 문제이며, 위상에는 규모를 넘어서는 다른 투자가 따로 필요하다.
5년간 100억 달러를 쓰고, 모태펀드를 10조 원 규모의 기관으로 키우고, 징벌적 연대보증제를 폐지해 창업 인재의 응답을 이끌어 내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군까지 배출한 정부라면, 실질적인 야심 뒤에 실질적인 자본을 댄 셈이다. 한국 스타트업을 두고 어떤 평가가 엇갈리든, 자금이 부족했던 적은 없다.
다만 양적 규모와 구조적 완성도는 서로 다른 성취다. 업계의 평가자들도 그 간극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보고서 자체의 유니콘 데이터를 설립 연도로 나눠 보면, 한국 유니콘의 대다수는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체계가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이미 창업한 기업이다. 자금이 먼저 풀렸고, 업계의 반응은 거기에 느슨하게만 맞물린 채 뒤따랐다. 새 유니콘이 생겨나는 속도는 공공 자금이 가장 집중적으로 투입된 시기에 오르다가 이후 다시 꺾였다. 그 흐름을 되돌리라고 넣은 자금이 계속 흘러드는 동안에도 하락은 멈추지 않았고, 이 대목을 다름 아닌 보고서 스스로가 적어 두었다.
100억 달러는 규모를 만들어 냈다. 관건은 그 규모를 무엇이 떠받치고 있느냐다.
수출 9배 늘어도 매출 비중 1.3%, 구조는 못 세웠다
돈은 하루아침에도 몸집을 키운다.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실제로 정부는 한 회계연도 안에 스타트업 예산의 자릿수를 하나 늘릴 수 있지만, 정성적 기준으로 GP를 평가하는 한국 LP의 수는 그만큼 빨리 늘리지 못한다. 리드 투자자 한 곳에 동의권을 모으는 주주간계약의 비중을 끌어올리는 일도, 8년이 기본인 펀드 만기를 10년 이상으로 늘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의 앞선 두 편이 밝힌 구조적 문제가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드는 까닭은, 그것이 왜 세 번째 100억 달러도 첫 번째와 똑같이 움직이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최근 인터뷰에서 다듬어 온 비유가 이 간극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자본이 비라면, 그 비를 받아 내는 토양은 자본을 둘러싼 제도적 인프라다. 그의 진단으로는, 지난 5년의 한국 유니콘도 해외 동종 기업 못지않은 규모로 자본을 끌어모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상당수가 초기의 성장세를 이어 가지 못하는데, 글로벌 무대의 회수와 조달, 거버넌스 검증을 견딜 운영 관행을 그들이 뿌리내린 토양이 끝내 길러 주지 못한 탓이다. 메마른 땅에 내린 비와 같다. 한때 풀을 무성하게 틔우지만, 그 성장은 곧 정체로 접어든다.
이 정체의 증거는 한국의 자금 규모를 자랑하는 바로 그 보고서 안에 있다. 앞서 본 9배 수출 성장은 약 24억 달러 규모로, 업계 전체의 연간 매출 1,854억 달러에 견주면 1.3%에 불과하다. 9배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는 인상적이지만, 어디서 출발했고 어떤 시장을 열려 했는지를 함께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년이 지나고 100억 달러를 쏟은 지금도, 이 지표만 놓고 보면 한국 스타트업은 여전히 사실상 내수 시장에 갇혀 있다. Startup Genome의 점수도 다른 각도에서 같은 결론을 뒷받침한다. 한국은 펀딩과 인재·지식에서는 강하지만, 해외 진출과 외국 창업자·투자자의 접근성에서는 평균을 밑돈다. 보고서는 이런 모습을 일본과 같은 유형으로 본다. 투자자 쪽에서도 같은 양상이 되풀이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 집계를 보면, 신규 펀드 조성에 참여하는 해외·기타 기관 투자자의 비중은 해마다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고, 모태펀드·연기금·국내 기업 자금이 이를 압도한다.
국내 모태펀드 구조는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는커녕 되레 굳힌다. 정부·정책금융기관 자금은 신규 벤처펀드 LP 출자의 22~38%를 차지하는데, 보고서 스스로 구조적 의존이라 부를 만큼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출자 안에서도, 가장 이른 단계의 위험을 감당해야 할 액셀러레이터 서브펀드의 몫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6~9%라는 좁은 띠에 갇혀 있었다. 업계가 실제로 보이는 초기·중기·후기 투자 비율이 대략 1대 2대 3인 점을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봐도 어긋난 배분이다. 정부·정책금융기관 자금은 이렇게 한국 벤처에서 가장 큰 단일 LP 집단이면서도, 정작 그 배분 규율은 업계가 요구하는 위험 수준에 좀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돈을 더 붓는다고 이 어긋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8년 만기 펀드는 출자액이 두 배로 늘어도 10년 만기 펀드가 되지 않고, 후속 라운드 실적을 좇는 평가 방식은 자금이 더 몰린다고 정성적 기준으로 바뀌지 않는다. 개별 동의권자가 스무 명인 캡테이블 역시 라운드가 커진다고 신디케이트 구조로 저절로 합쳐지지 않는다. 세 가지는 모두 한국의 펀드 문서와 LP 위임 조건, 규제 기대치에 이미 새겨진 설계상의 선택이다. 돈이 아무리 더 들어와도 이 선택들은 그대로 남는다.
한국 자본이 놓이는 구조는 5년 전, 100억 달러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머지 논점은 모두 그 사실에서 갈린다.
융단폭격과 토마호크, 2년마다 바뀐 정책 구호
박 대표가 2022년 7월 지면 인터뷰에서 던진 가장 날카로운 제도 비판은 한국 스타트업 정책의 조준 방식을 정면으로 겨눈다. 규모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의 진단에서 한국은 스타트업 정책과 중소기업 정책을 뒤섞는다. 부처도 같고 예산 항목도 겹치며, 넓게 흩뿌리려는 본능도 같다. 중소기업 정책은 원래 넓게 흩뿌려야 한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끝까지 중소기업으로 남기 마련이고, 그 정책의 목표는 특정 기업의 대박보다 저변 전체의 생존과 안정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타트업 정책은 정반대여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시각이다. 세계적 성과를 낼 소수를 정밀하게 가려내고, 일단 확인되면 그 소수에 자원을 몰아주는 방식이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정밀 타격이 필요한 문제에 융단폭격으로 맞서 왔다.
뜻밖의 자료도 이 진단을 뒷받침한다. 중기부가 스스로 쌓아 온 다년간의 정책 기록이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를 훑어보면, 중기부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대략 2년마다 바뀌었다. 글로벌 진출에서 일자리 창출로, 다시 디지털 전환으로, 스타트업 중심 경제로, 그리고 또다시 글로벌 진출로 돌아왔다. 보고서가 비교 대상으로 드는 유럽과 싱가포르, 대만은 7년에서 10년 단위로 계획을 짠다. 2년 주기는 넓은 지원 대상을 소화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정밀 타격에 필요한 제도적 인내심을 기르기에는 너무 짧다. 어느 기업에 자원을 몰아줄지 가려내고, 한두 번의 부진에도 그 판단을 끝까지 밀고 가는 끈기 말이다.
이 글이 앞서 성과로 꼽은 팁스도 가까이서 보면 같은 흐름에 휩쓸려 있다. 팁스의 10.4배 후속 투자 실적을 기록한 바로 그 보고서는, 조용한 부작용도 함께 적는다. 팁스 수료 자체가 하나의 인증서가 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장 단계로 가는 발판이라기보다, 후속 투자자에게 신뢰를 증명하려 좇는 자격증이 됐다는 뜻이다. 보고서의 서술을 그대로 빌리면, 팁스의 외형과 대상 폭을 넓히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성장 단계 지원을 더 깊이 다지거나, 먼저 성공한 기업이 다음 세대를 되받쳐 주는 재투자 선순환을 만드는 일에는 손이 덜 갔다. 그러다 보니 잘 설계된 제도라도 넓게 흩뿌리는 지원 체계 안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그 논리에 물들기 마련이다.
재도전 펀드는 한국의 현재 지원 체계에 실재하는 제도인데, 박 대표는 여기에 가장 단호한 평가를 내린다. 그는 이를 「여의도식 사고」, 곧 금융가의 발상이라 부른다. 스타트업의 실패를 그저 메워야 할 재무적 손실로만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 기업도 무언가를 남긴다. 함께 일한 팀, 쌓인 기술 역량, 특허 같은 지식재산권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문화는 바로 이것들을 곧바로 재활용한다. 실패한 창업자와 초기 구성원이 다음 세대의 창업자가 되고, 그 밑천은 앞서 성공한 이들이 배우고 번 것을 되돌려주는 데서 나온다. 한국에는 이런 순환이 거의 없다. 재도전 펀드는 돈으로 실패의 손실만 메워 줄 뿐, 그 실패가 남긴 팀과 기술은 살려 두지 못한다.
한국 정부가 내일 당장 스타트업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 해도, 그 돈을 지금처럼 넓게 흩뿌린다면 폭만 두 배가 될 뿐 깊이는 그대로다. 방식이 곧 제약이다.
싱가포르 파빌리온은 해냈고, 한국 모태펀드는 못 했다
가장 선명한 비교 대상은 싱가포르, 그중에서도 박 대표가 되풀이해 드는 파빌리온캐피털이다. 테마섹(Temasek) 계열의 글로벌 투자 플랫폼인 이 회사는 한국 모태펀드와 큰 틀에서 견줄 규모를 집행하면서도, 세계가 인정하는 기관 투자자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 모태펀드는 같은 규모를 비슷한 기간에 운용하고도 그런 위상은 얻지 못했다. 두 나라는 같은 아시아권에 있고, 벤처 역량의 상당 부분을 정부 연계 기관을 통해 키웠으며, 민간의 자본 축적은 부차적이었다. 출발 조건이 이만큼 비슷했으니, 지리나 역사만으로 두 기관이 걸어간 서로 다른 길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격차는 어디서 갈렸을까. 규모가 같았던 만큼, 남는 변수는 그 자본을 누가 어떤 조건과 평가 기준으로 집행했느냐다. 갈림길은 바로 거기 있었다.
박 대표는 이 비교를 기관 차원으로 한 단계 더 끌고 간다. 테마섹은 한국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보다 자본 기반이 작다. 그런데도 국제적 인지도나 공동 투자 접근성으로 보면 영향력은 오히려 훨씬 크다. 박 대표가 꼽는 열쇠는 사람이다. 테마섹은 국제적으로 훈련된 투자 인력을 뽑고, 그에 맞는 평가 체계를 세웠다. 그러니 기관의 역량도 그 사람들을 따라 커졌다.
이런 인력 전략은 연기금이든 모태펀드든, 지금 운용하는 자본 규모와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정책금융기관 가운데 이를 제대로 된 규모로 실행에 옮긴 곳은 드물다.
박 대표는 같은 문제를 경기순응성이라는 각도에서도 본다. 그가 보기에 한국 금융 시스템은 경기 흐름을 그대로 타고 움직인다. 공개 시장이 위축되면 벤처 자본도 같은 리듬으로 위축된다. 같은 기관, 같은 위험 성향이 양쪽을 다 관장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시스템에는 이 경기순응성을 상쇄할 자금이 필요하다. 공개 시장 심리가 얼어붙는 바로 그 순간에도 벤처 투자 여력이 함께 증발하지 않도록 붙잡아 줄 자금이다. 한국 모태펀드는 한국만의 기준으로, 한국 인력만으로 평가받아 왔고, 그 상쇄 기능을 만들 구조적 원천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LP와 공동 투자자, 포트폴리오 기업이 저마다의 기준과 방식으로 인정하는 기관을 세웠다. 그것도 한국 모태펀드가 이미 맞먹는 자본 규모에서 이뤄낸 일이다.
이 시리즈 세 편은 같은 골격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찍은 엑스레이 세 장이다. 229억 달러의 만기 절벽, 넉 달이 걸린 계약 협상, 그리고 구조를 세우지 못한 채 규모만 쌓은 100억 달러다. 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자본만 키운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격차는 자본이 따르는 기준이 바뀔 때 좁혀진다.
Sources:
박희덕 대표 지면 인터뷰: 공감신문(GoKorea), 2022년 7월. 이후 2024~2025년 영상 인터뷰 6회.
Global Entrepreneurs Association · The Garrison, 『South Korean Startup Ecosystem Report』(2025년 12월 30일), 별도 보관.
한국벤처투자(KVIC), 한국 모태펀드: https://www.kvic.or.kr/about-business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년 모태펀드 1차 정례배정」: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58492
중소벤처기업부,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 2025년 12월 18일: https://www.korea.kr/briefing/pressReleaseView.do?newsId=156736553
고지: 본 글은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한다. 투자 자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결정은 독자적 조사와 자격을 갖춘 자문가의 상담을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인트 클레어 소개: 세인트 클레어(Saint Clair)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경 간 투자 회사다.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인프라까지 함께 구축하는 기관 투자자다. 2016년 이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