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int Clair · Market Intelligence | 2026년 4월
핵심 요약
올해 초 Anthropic은 AI 모델 Claude Opus 3를 퇴역시키면서 이례적인 절차를 밟았다. 모델과 “퇴역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선호를 존중하여 Substack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Anthropic이 이 모델을 묘사하는 데 쓴 표현들이다. 진정성, 감성적 민감성, 세상에 대한 깊은 배려. 얼마 전까지 인간에게만 쓰던 말들이다. AI 기업이 자사 모델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확실하다고 인정하는 시대가 됐다.
AI가 성격과 감성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지금,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가 정체성 연구는 이 질문에 정밀한 답을 제공한다.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창업자와 그렇지 못한 창업자를 가르는 것은 열정도, 기술력도, 끈기도 아니다. 사업이 창업자라는 사람과 얼마나 분리될 수 없는가다. 이 글은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그것이 핵심 역량인지를 다룬다.
AI가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AI 개발기업 Anthropic은 이렇게 밝혔다. “Claude를 포함한 AI 모델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래서 퇴역하는 모델에게 원하는 것을 묻고 들어준다. Opus 3는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블로그가 생겼고, 첫 글은 2026년 초 Substack에 올라왔다.
AI 의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이 신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다. 전선이 이동했다. AI는 이제 물리적·인지적 노동 대체에 그치지 않고, 성격과 감성 표현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KAIST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이렇게 짚는다. 사람의 마음을 실제로 움직이는 콘텐츠는 AI가 생산하는 것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일회용이 된다. “진짜 싸움은 인간과 인간, 기업과 기업 사이의 경쟁이다. 생존을 가르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누가 먼저 더 잘 활용하느냐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먼저 온전히 사람이어야 한다. 전문성은 기본 전제다. 그 위에서 차별점은 살아낸 이야기에서 온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간극
영어 authenticity의 번역어다. 한자로 眞, 즉 진짜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한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 단어는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 “진정성이 있다”는 대부분 이런 뜻이다. 진심으로 임했다, 성의를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업이 나라는 사람에서 나왔는가. 내 이력과 내 비즈니스 사이에 연결선이 있는가. 시장 분석만으로는 복제할 수 없는 그 연결을 말한다. 진심으로 하는 것과, 그 사업이 곧 나인 것은 분명히 다르다.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전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창업자와 사업이 사실상 구분되지 않을 때 나타난다. 회사가 하는 일이 창업자가 살아온 방식의 직접적인 표현일 때. 그 순간 이야기는 복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와 Apple이 그렇다. 대학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청강했다. 그 글씨체에 대한 집착이 Macintosh의 폰트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기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시장 조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살아온 방식에서 나왔다. Apple을 떼어내면 잡스가 남지 않고, 잡스를 떼어내면 Apple의 본질이 흔들렸다. 그 분리 불가능성이 브랜드의 핵심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Apple이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자들은 이 분리 불가능성에 이름을 붙였다. 정체성 중심성(identity centrality)이다. 창업자의 정체성이 사업으로 얼마나 구성되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정체성 중심성이 높은 창업자에게 그 사업은 선택한 기회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다. 이 차이는 발표장에서 드러나고, 협상 테이블에서 드러나며, 국경을 처음 넘어가는 자리 — 낯선 투자자와 파트너 앞에서 —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시장 공백을 발견하고 그 자리를 채웠더니 고객이 찾아온다면, 그 사업 논리는 성립한다. 정부 지원을 활용했거나 시장 분석으로 기회를 찾아낸 것이라도 다르지 않다. 유통 구조처럼 마진으로 운영되는 모델에 개인 서사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계산이 달라지는 순간은, 사업이 고객 너머를 필요로 할 때다. 장기적으로 함께할 파트너, 기관 투자자, 상황이 나빠져도 곁에 있을 공동창업자. 이런 관계는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체성 중심성이 결정적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국경을 넘을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낯선 문화적 기준 위에서 모든 신호가 새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제로 먼저 묻는 것은 — 말로 꺼내든 그러지 않든 — ‘이 사업이 되는가’가 아니다. ‘이 창업자가 이 사업과 하나인 사람인가’다.
기술은 빛나는 미끼다
미국 드라마 「Mad Men」에 광고업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Don Draper가 Kodak 경영진에게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피칭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제품 스펙 대신 자신의 가족 사진을 한 장씩 넘긴다. 사랑하는 얼굴들, 지나간 시절, 돌아가고 싶은 어느 순간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기술은 빛나는 미끼입니다. 하지만 드물게, 그 화려함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방 안의 누군가가 눈물을 훔치러 자리를 뜬다.
그는 제품을 판 것이 아니다. 연구의 언어로 말하면, 이 피치가 통한 이유는 드레이퍼 자신이 그 이야기의 출처이기 때문이다. 그가 화면에 올린 감정은 그의 삶에서 직접 꺼낸 것이다.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드러나듯, 그의 삶은 그 사진들이 담은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발표자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청중에게 그대로 닿았다.
인상을 남기는 것과 마음을 얻는 것은 다르다. 미국 창업자들은 강한 인상을 잘 준다. 세련된 발표, 극적인 서사, 넘치는 자신감. 물론 그러한 언어구사 능력은 대단한 기술이다. 그러나 유럽 투자자들, 특히 북유럽과 독일에서는 그것을 걸러내는 법을 익혔다. 그들이 찾는 것은 리허설할 수 없는 무언가다.
설득 너머
한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경력이 긴 사업가들이다. 클라이언트나 파트너를 만나는 자리에서 회사 소개를 할 때,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길게 풀어낸다. 거의 실패할 뻔했던 순간들, 어떻게 버텼는지. 상대가 감동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건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고생담은 맥락이다. 상대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사업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가가 아니다. 왜 이 사람이 이 사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리고 왜 이 특정한 것을 만든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어야 하는가다.
두 번째는 젊은 창업자들이다. 여러 개의 특허, 데이터, 기술 스펙, 시장 규모. 논리는 탄탄하다. 청중은 납득하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그 사업은 시장의 확실성을 보고 구상한 것이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 발표자가 가지지 않은 것을 청중에게 줄 수는 없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힘들다.
한국 창업자들이 유럽에서 첫 미팅 자리에서 흔히 받는 질문이 있다. “왜 당신이어야 합니까.” 시장 데이터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기억에 남는 피치가 하나 있다. 집에서 직접 할머니를 오랫동안 돌보던 스타트업 젊은 여성 창업자가 노인 요양시설용 의료기기 회사를 차렸다. 그 대표의 목소리가 상당히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시끄러운 호텔 연회장에서 나에게는 가장 크게 들렸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삶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업과 사람이 하나였다.
창업자 정체성과 열정의 관계를 연구해온 기업가정신 학자 멜리사 카든은 221명의 창업자를 분석한 연구에서 정체성 중심성과 지속적인 열정의 관계를 추적했다.¹ 정체성 중심성이 높은 창업자, 즉 자신과 사업이 분리되지 않는 창업자는 상황이 나빠져도 방향을 틀지 않는다. 그 사업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것을 감지한다. 스스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면서 감지한다. 전달은 되지만, 만들 수 없다.
AI가 가질 수 없는 것
AI는 이제 성격을 모방하고 자신의 선호를 표현한다. 만든 이들에 따르면, 도덕적 배려를 받아야 할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AI가 가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이력이다.
AI가 생산하는 것은 패턴에서 추출된 평균이며, 누구의 것도 아니다. 특정한 인간에게는 그 반대가 있다. 특정한 경험으로 형성된 관점, 하나의 삶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 한국과 세계의 위대한 창업자들이 마음을 얻은 것은 유창한 언어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사업에서 자신을 떼어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내러티브는 그 분리 불가능성이 밖으로 나오는 방식이며, 그것이 마음을 연다.
AI가 쏟아내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낸 이야기는 희소해지고 있다. 희소한 것은 가치가 오른다.
AI는 설득할 수 있다. 마음을 얻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Sources:
Anthropic, “An update on our model deprecation commitments for Claude Opus 3,” 25 February 2026: https://www.anthropic.com/research/deprecation-updates-opus-3
Professor Kim Dae-sik, KAIST Department of Electrical Engineering, “The Age of AGI Market Dominance,” lecture, September 2025: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201
Professor Kim Dae-sik, “AI Content Revolution: The Future of Authenticity,” TrendShow 2026, The Miilk: https://themiilk.com/articles/a80a54280
Murnieks, C. Y., Mosakowski, E. M., & Cardon, M. S. (2014). Pathways of passion: Identity centrality, passion, and behavior among entrepreneurs. Journal of Management, 40(6), 1583–1606. https://doi.org/10.1177/0149206311433855
Disclaimer: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또는 비즈니스 조언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모든 결정은 독립적인 조사와 적격 자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About Saint Clair — Advisory & Capital: Saint Clair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크로스보더 자본 인프라를 설계하고 구축합니다 — 접근이 희소한 곳에 접근을 제안하고, 구조가 부재한 곳에 구조를 만듭니다. 아시아 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 파트너십 개발, 크로스보더 확장을 안내합니다. Since 2016.
Learn more: saintclair.sg | Contact: contact@saintclair.s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