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부터 꺼내는 사람
비즈니스 네트워킹에는 사교의 영역이 있다. 한국 사람은 그 자리를 영업으로 쓰고, 거기서부터 어긋난다. 서양에서 관계는 먼저 베푸는 데서 시작되며, 베풂은 명함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관심이다.

Saint Clair · 마켓 인텔리전스 | 2026년 6월
이태원의 한 가정집, 열다섯 명이 모인 작은 파티였다. 셋 중 하나는 한국인, 나머지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었다. 이태원에서 네일숍을 하는 한 참석자가 자리를 돌며 모두에게 명함을 돌렸다. 외국인 손님이 익숙한 사람인데도, 그 자리의 공기는 읽지 못했다. 초대한 집주인의 표정이 식었지만, 본인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끝내 몰랐다. 그는 사교의 자리를 영업의 자리로 바꿔 놓았다. 거실을 매장으로 착각한 셈이다.
명함을 인사처럼 돌리거나, 인사도 없이 “저는 누구고, 무슨 일을 하고, 여기 왜 왔다”며 용건부터 꺼내거나, 분위기도 살피지 않고 남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다. 노련한 사람은 멀찍이서 끼어들 때를 기다리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대화가 한창일 때 그 흐름을 가로챈다. 모습은 달라도, 결국 모두 사교의 자리를 거래의 자리로 바꾼다.
사실 이런 자리는 지극히 서구적이다. 더 정확히는 국제 무대의 방식인데, 한국인은 그것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교수든 창업가든 사업가든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익숙한 우리 방식을 그대로 들고 가면, 국제적인 자리에서는 어색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뒤의 점원
백화점을 떠올려 보자. 한국의 매장에서는 점원이 손님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일거수일투족을 말없이 지켜본다. 손님이 무언가 필요로 하는 순간 곧바로 응대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에 밴 정성이지만, 어딘가 정해진 각본을 따르고, 등 뒤에 바싹 붙어 오는 그 거리는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거의 미행처럼 느껴진다. 반면 북미나 유럽은 사뭇 다르다. 점원이 먼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안부를 묻는다. 게다가 손님도 자연스럽게 받아 주니, 그 태도는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것이다. 거리는 두되, 손님을 잠재 고객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한다. 이 짧은 주고받음이 곧 스몰토크다.
네트워킹 자리도 다르지 않다. 한국 사람도 그 점원처럼 따라붙는다. 명함을 돌리고, 본론으로 직행하고, 목적을 앞세운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은 손님이 아니라 동료다. 그래서 목적이 빤히 드러나는 순간, 관계는 열리기도 전에 닫힌다.
사교가 먼저다
오해는 단순하다.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마케팅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교이고, 거래는 한참 뒤에 온다.
정상들의 만남을 보라. 두 나라의 대통령이 마주해도 먼저 함께 식사하고, 선물을 나누고, 도시를 함께 돌아본다. 사업과 협상은 늘 맨 마지막에 놓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래조차 사교라는 긴 서막을 지난 뒤에야 비로소 본론에 이른다.
서양에도 그들만의 눈치가 있다. 오히려 목적을 너무 빤히 드러내는 쪽을 그들은 결례로 여긴다. 한국의 눈치가 위아래를 살핀다면, 서양의 눈치는 제 목적을 앞세우지 않는 절제로 나타난다. 그런데 한국인이 그토록 자부하는 눈치를, 정작 이런 자리에서는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어긋남도 한국에서, 더구나 우리가 주최하는 자리에서는 너그러이 넘어간다. 그러나 국경을 넘으면 사정이 다르다.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해마저 부른다.
받기 전에 베풀라
받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베풀라. 그리고 그 보답은 내가 베푼 바로 그 사람에게서 곧장 돌아오지 않는다. 베풂은 네트워크를 돌고 돌아, 뜻밖의 곳에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인맥의 고전 『혼자 밥 먹지 마라』를 쓴 키스 페라지가 “점수를 매기지 말라”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만 베푸는 것은 명함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상대에게 진짜 관심을 보이는 일이다. ‘인간관계의 대가’ 데일 카네기가 90년 전에 남긴 말도 다르지 않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 하려 2년을 애쓰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남에게 관심을 갖는 두 달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은 질문을 쏟아내는 일이 아니다. 나이와 직함, 사는 곳을 캐묻는 취조는 오히려 관심의 반대다. 진짜 관심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그가 스스로 말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명함을 내미는 일이 상대에게 받기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관심은 상대가 먼저 내어놓고 싶게 만드는 일이다.
천천히, 여러 번
사교는 빠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네트워킹 자리를 그토록 자주 연다. 한 번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다. 같은 분야의 모임에 꾸준히 나가다 보면 아는 얼굴이 하나둘 생기고, 그 자리도 점점 익숙해진다. 그러면 인사할 사람이 생기고, 나눌 이야기가 생긴다. 그렇게 한 걸음씩 관계가 자란다. 이것이 바로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명함은 당신의 사업을 소개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을 남기는 것은 그 짧은 순간에 오간 교감이다.
출처(Sources):
키스 페라지(Keith Ferrazzi), 『혼자 밥 먹지 마라(Never Eat Alone)』, 2005 — “받기 전에 먼저 베풀라(It’s better to give before you receive)”, “점수를 매기지 말라(never keep score)”. 확인: https://www.mickmel.com/notes-from-never-eat-alone-by-keith-ferrazzi/
애덤 그랜트(Adam Grant),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2013 — 베푸는 사람(giver)이 가장 넓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보답이 베푼 상대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뜻밖의 곳에서 돌아온다는 연구. 확인: https://greatergood.berkeley.edu/article/item/10_ways_to_get_ahead_through_giving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1936 — 제1원칙 “먼저 상대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라”와 본문 인용. 영문 원문: “You can make more friends in two months by becoming interested in other people than you can in two years by trying to get other people interested in you.” 확인: https://fs.blog/how-to-win-friends-and-influence-people/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한국어판(1947년 초역 이래 스테디셀러)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900397
세인트클레어의 유럽–아시아 및 한국 회랑 네트워킹 현장 관찰(이태원 가정 파티·갈라·리셉션 사례), 2016~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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