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라는 관문
넉 달. 해외 자본이 시리즈 C에 이른 뒤, 마켓컬리가 기관투자자 열여덟 곳에 흩어진 거버넌스를 하나로 맞추는 데 쓴 시간이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글이 이 넉 달을 계약의 문제로 봤다면, 이번 글은 똑같은 넉 달을 거버넌스에서 다시 마주한다.

Saint Clair Capital · 그라운드 트루스 | 2026년 7월
핵심 요약
해외 자본이 마켓컬리 시리즈 C에 들어왔을 때, 정작 발목을 잡은 것은 거버넌스였다. 회사의 기존 국내 주주인 기관투자자 열여덟 곳의 동의권을 하나로 모으는 데만 넉 달이 걸렸다. 앞서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글이 쿠팡의 계약에서 확인한 그 넉 달이, 이번에는 한 겹 아래 거버넌스에서 똑같이 되풀이됐다. 해외 투자자가 원하는 거버넌스는 분명하다. 독립적인 이사회와 실제로 돌아가는 감사위원회, 이사회 결의와 지식재산권(IP) 양도를 빠짐없이 정리한 서류, 정해진 주기로 이뤄지는 표준 보고, 그리고 기업가치의 근거가 되는 IP의 소유권. 이 네 가지다.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서기 전에 이 조건을 모두 갖춘 한국 기업은 드물다. 국내에서는 애초에 이런 것을 요구한 적이 없고, 그때까지 창업자에게 ‘주변 누구도 지키지 않는 기준을 미리 갖춰 두라’고 일러 준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희덕의 컬리 사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거버넌스 준비가 제품·시장 적합성(PMF)보다 먼저 거래를 여닫는 관문이 되고, 그것을 다시 갖추는 데만 6개월에서 18개월이 걸리는데, 막상 해외 투자자가 눈앞에 앉은 시점에 대다수 창업자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컬리 한 곳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다룬 모든 국경 간 거래에는 한국의 국내 기준과 글로벌 기준을 잇는 ‘번역’이 필요했다. 그 번역이 미리 돼 있으면 자본은 곧바로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마감에 쫓기며 그 번역을 직접, 값비싸게 떠맡는다.
컬리의 넉 달
해외 자본은 마켓컬리 시리즈 C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전국 단위의 새벽 배송, 다른 시장의 투자자들이 봐도 경쟁력이 분명한 상품기획(MD) 선별 시스템, 그리고 한국 전자상거래에 없던 인프라로 커 가는 회사였다. 그러나 실사가 제품에서 서류로 넘어가는 순간,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회사를 위해 지어진 거버넌스 구조였다.
그 무렵 컬리 캡테이블에는 기존 국내 주주인 기관투자자 열여덟 곳이 지분을 나눠 들고 있었다. 저마다 한국식 주주간계약 관행에 따라 협상한 동의권을 쥐고 있었고, 그 권리는 주주마다 따로 갖고 따로 행사하는 것이었다. 새 투자자가 들어오려 할 때마다 하나하나 다시 협상해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이 열여덟 갈래의 지분을 새 자본이 실제로 감당할 하나의 구조로 묶는 데 넉 달이 걸렸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글도 쿠팡 시리즈 C에서 거의 같은 넉 달을 마주했다. Sequoia Capital이 자본을 넣기까지 한국 주주 스무 명 안팎의 동의를 받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 글은 이를 계약 구조의 문제로 봤다. 개별 거부권을 글로벌 신디케이트 라운드에 맞추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컬리에서 같은 넉 달이 되풀이된 것도, 그 아래 깔린 문제가 똑같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거버넌스의 눈으로 보면 진단이 또렷해진다. 컬리에는 국제 투자자가 인정할 이사회도, 독립적인 감시 장치도 없었다. 열여덟 투자자가 저마다 거부권을 쥔 것도, 그들의 이해를 하나로 묶어 줄 이사회가 없어서다. 투자자가 새로 들어올 때마다 원점에서 다시 협상하는 것 말고는 이견을 풀 길이 없었다. 계약의 혼란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 진짜 원인은 그 아래 거버넌스의 공백이었다.
박희덕의 여러 인터뷰를 통틀어, 그가 이 사례를 가장 날카롭게 파고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컬리의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은 제품이 아니라 거버넌스 준비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기업이 세계로 나가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준을 갖춰야 비로소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컬리의 제품은 통했다. 새벽 배송 모델은 이를 검토한 투자자들도 인정한 경쟁력이었다. 그 자체로 탄탄했고, 쉽게 따라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강점도, 해외 자본이 받아들일 거버넌스를 다시 세우는 데 든 넉 달을 줄여 주지는 못했다. 박 대표에게 순서는 분명하다. 거버넌스가 제품에 앞선다.
결국 넉 달은, 처음부터 있었어야 할 거버넌스를 뒤늦게 갖추는 값이다. 그 거버넌스가 왜 없었는지,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래에서 짚는다.
이사회부터 IP까지, 해외 자본이 요구하는 네 가지
글로벌 거버넌스는 국제 투자자가 실제로 쓰는 말로 옮기면 네 가지 요건으로 나뉜다. 이사회 구성, 문서화 규율, 표준 보고, 그리고 지식재산권 소유의 명확성이다. 어느 하나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해외 라운드를 앞둔 한국 기업 대다수는 이 넷 중 어느 것도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첫째는 이사회 구성이다. 국제 투자자가 기대하는 이사회에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있어야 한다. 창업자에게 매여 있지도, 특정 주주와 자본으로 얽혀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감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열려 재무 상태를 점검하고, 외부 감사인이 믿고 쓸 수 있는 의사록을 남겨야 한다. 그러나 시리즈 B나 C 단계의 한국 기업은 대개 이 둘 다 갖추지 못한다.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있더라도,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기구라기보다 주요 주주들이 모이는 자리인 경우가 많다. 글로벌 펀드는 자본을 넣기 전에 자사 LP에게 ‘우리가 감독하는 이사회가 있다’는 사실부터 확인시켜야 하는데,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그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사실상 이름만 바꾼 주주총회다.
둘째는 문서화 규율이다. 이사회 결의는 날짜를 붙여 정식 의사록으로 남기고, 주주 동의는 표준 양식으로 받아 둔다. 지식재산권 양도도 실사 요청이 온 뒤 부랴부랴 짜맞출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생기는 순간 곧바로 서면으로 마무리해 둬야 한다. 이 일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 변호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문서 관리가 엉망인 것이 오히려 보통이라는 것이다. 서류는 대개 어딘가에 있긴 하다. 그러나 색인도 날짜도 없이 창업자의 개인 드라이브와 초기 직원의 메일함에 흩어져 있어, 몇 주를 들여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지 않고서는 어떤 실사팀도 믿고 쓸 수 없다.
셋째는 표준 보고다. 국제 투자자는 데이터룸을 열기 한참 전부터 핵심성과지표(KPI)를 당연한 일상처럼 챙긴다고 전제한다. 회계 기간이 바뀌어도 앞뒤가 맞는 숫자가, 그것도 외부 감사인이 인정하는 수준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반면 한국 기업은 국내 투자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보고하는 일이 잦다. 정해진 틀에 맞춰 꾸준히 챙기기보다, 요청이 와야 비로소 숫자를 맞춘다. 이 차이는 한국 기업이 덜 꼼꼼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주기로 숫자를 뽑아내는 체계 자체가 없어서 생긴다. 해외 라운드가 오기 전에는 그런 보고를 요구하는 쪽이 없었으니, 그 체계를 만들 이유도 없었다.
넷째는 지식재산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자가 가장 뒤늦게, 대개는 너무 늦게 깨닫는 대목이다. 한국 기업에서는 관행적으로, 직원이 만든 발명을 회사가 넘겨받는 계약, 곧 직무발명 승계를 대충 넘기거나 아예 매듭짓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개발자가 제품을 만들면, 회사는 당연히 그 결과물이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작 ‘그렇다’고 못 박은 서류에 서명해 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외 투자자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해외 라운드의 실사를 맡은 법률 자문은 기업가치의 근거가 된 지식재산권을 두고, 회사마다 또 특허 하나하나마다 ‘실제 주인이 누구냐’를 따진다. 답이 흐릿하면 라운드가 늦춰지거나 가격이 깎이거나, 둘 다 벌어진다.
한국의 거버넌스 법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5년 7월 시행된 개정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넓혔다. 해외 투자자가 신뢰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이 신인의무 기준이다. 다만 이를 둘러싼 더 넓은 개혁은 대부분 상장사를 겨냥한 것이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비상장 벤처 단계의 이사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한국의 실무도 아직 답을 찾는 중이다. 기준은 높아졌다. 그러나 시리즈 B나 C 기업의 이사회 서류는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계약 쪽에서도 곧 변화가 이어졌다. 2026년 6월 30일 벤처투자 표준계약서가 3년 만에 개정되면서 투자계약서와 주주간계약서가 분리됐다. 투자자 전원의 만장일치를 받아야 하던 사전동의권은 이 가운데 주주간계약서에서, 한 라운드 안 3분의 2 이상의 집합적 동의로 바뀌었다. 이 글이 첫머리에서 던진, 흩어진 동의권을 하나로 모으는 문제를 뿌리에서 손본 셈이다. 다만 이는 강제 규정이 아니라 표준계약서일 뿐이어서, 개정 이후에 새로 쓴 계약에만 적용된다. 한국은 문제를 제대로 짚었고, 앞으로 맺을 계약에는 해법을 마련했다. 다만 2026년 6월 이전에 짜인 캡테이블은 하나같이 예전 그대로다.
이 네 가지 요건은 한 가지 조건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투자자가 그 회사에 자본을 대기 전까지는, 어느 요건도 시험대에 오르지 않는다. 한국 기업은 주요 주주로 채운 이사회, 문서로 제대로 남기지 않은 의사 결정, 그때그때의 보고, 서면으로 정리하지 않은 지식재산권 양도만으로도 여러 해를 버틸 수 있다. 국내에서 사업하는 동안에는 이 빈틈이 겉으로 드러날 일도 없다. 국내 투자자 역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데, 그들도 회사와 똑같은 관행 안에서 움직이는 탓이다.
그래서 해외 자본과 처음 마주하는 순간은 남다르다. 가격이나 조건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회사의 거버넌스가, 애초에 맞출 생각도 없던 기준 앞에 처음으로 놓이는 순간이다. 그것도, 한 치 봐줄 이유가 없는 상대 앞에서다.
세 번 라운드 닫은 창업자도, 규칙의 존재를 몰랐다
이 격차 앞에서 정책은 자연히 절차적인 해법으로 기운다. 요건을 알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돌리고, 부족한 인식을 채워 주는 식이다. 이런 접근은 창업자가 규칙을 모른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보다 좁고, 그래서 더 어렵다. 창업자는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규칙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가 몸담은 세계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입에 올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돈으로 시리즈 A와 B를 지나온 한국 창업자에게,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앉히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내 텀시트가 요구하지 않고, 회사를 평가하는 주주들도 감사위원회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창업자의 법률 자문 역시 국내 라운드를 제때 마무리하려 선임된 사람들이라, 해외 실사팀을 만족시킬 거버넌스 서류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을 일이 없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준비하는 사람도 없다.
사실 이것은 익숙한 구조적 문제가 모습만 바꿔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한 체계에서 갈고닦은 역량이 다른 체계에서도 그대로 통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첫 번째 체계가 ‘다른 기준이 있다’는 신호조차 주지 않으면, 그 간극은 더 벌어진다. 세 번의 라운드를 제때, 합리적인 기업가치로 성사시킨 창업자라면 자기 회사의 거버넌스가 충분하다고 믿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그 거버넌스는 지금까지 회사가 치른 모든 시험을 무리 없이 통과해 왔다.
결국 이 격차는 창업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시스템의 문제다. 국내 기준과 해외 기준은 서로 다른 역사가 만든 별개의 규격이고, 한 회사의 생애에서 시점만 달리해 차례로 적용될 뿐이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기준이 바뀐다는 신호를, 국내 시스템은 창업자에게 주지 않는다. 법조계마저 대체로 그 안에서 움직이니, 국내에서는 아무도 시험하지 않을 기준을 미리 갖춰 두라 요구하는 이도 없다. 수요가 없으니, 그 일을 해낼 실무도 자리 잡지 못했다.
그 결과는 하필 가장 나쁜 순간에 터져 나온다. 느긋하게 손볼 수 있는 평온한 시기가 아니라, 마감일이 박힌 텀시트를 앞에 두고 자금 조달이 한창인 와중이다. 바로 그때 해외 실사팀이 요구한다. 요청한 형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서류와, 한 번도 운영해 본 적 없는 이사회를.
제품보다 거버넌스가 먼저, 재정비엔 6~18개월
박희덕의 컬리 사례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말을 넘어선다. 거버넌스가 아예 전제 조건이고, 해외 투자자는 겉으로 제품과 시장을 보러 왔더라도 실제로는 그것부터 따진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가 창업자에게 심어 온 순서를 뒤집는다. 한국 벤처판의 전제는 ‘제품이 먼저’다. 제대로 돌아가는 제품으로 고객 수요를 증명하면 그 숫자만큼 자본이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국내 자본에는 맞는 순서지만, 해외 라운드에서는 다르다. 해외 투자자에게 제품·시장 적합성은 여러 잣대 중 하나일 뿐, 거버넌스 준비가 그 평가에 앞선 관문이다. 이사회도, 문서 이력도, 정리된 지식재산권 소유도 내놓지 못하는 회사는 제품의 실력을 겨뤄 볼 자리에조차 서지 못한다. 사업이 아무리 탄탄해도 거래는 그 관문에서 멈춘다. 앞서 본 컬리의 넉 달이 그 증거다. 제품이 뛰어나도, 거버넌스를 다시 세우는 일 앞에서는 한 푼도 깎아 주지 않았다.
현실에서 이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네 가지 요건은 주말 하루에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갖추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이 시리즈가 지켜본 바로는, 전형적인 국내 수준에서 출발하는 회사에 6개월에서 18개월, 문서 공백이 깊거나 지식재산권 문제가 초기 직원 여러 세대에 얽혀 있으면 그 이상이다. 비용도 법률 수수료로 끝나지 않는다. 창업자와 경영진은 회사를 굴리고, 라운드를 닫고, 거버넌스를 다시 세우는 일을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떠안는다. 그들의 시간이 통째로 들어간다.
어긋남이 가장 뼈아픈 지점은 여기다. 정작 해외 투자자가 나타난 그때, 대다수 창업자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해외의 굵직한 관심을 받을 만큼 큰 회사라면, 느긋하게 거버넌스를 손볼 단계는 이미 지났다. 관심 자체가 시간을 죈다. 텀시트에는 마감이 걸려 있고, 경쟁 라운드가 나란히 돌아가기도 하며, 사외이사를 뽑고 감사위원회가 자리 잡는 사이에도 회사는 계속 자란다. 그래서 몇 해 전에 시작했어야 할 재정비가, 거래가 허락하는 몇 달로 몰린다.
이것이 컬리 시리즈 C가 드러낸 구조적 딜레마이고, 한국 기업이 해외의 진지한 관심을 받는 문턱마다 되풀이된다. 거버넌스 준비는 결국 인프라다. 압력이 없던 시절에 미리 쌓아 두든가, 아니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없든가 둘 중 하나다. 없다면 그 값은 뒤늦게 돌아온다. 몇 달의 시간으로, 협상력으로, 때로는 기업가치를 깎아 가며.
번역의 공백
컬리의 넉 달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같은 패턴이 이 시리즈가 다룬 굵직한 국경 간 거래마다 어김없이 나타난다. 두 번째 글은 그 문제를 계약 구조에서 찾아냈다. 투자자마다 따로 쥔 동의권, 클럽딜 구조, 라운드 전체를 묶어 줄 신디케이트 관행의 부재였다. 이번 글은 같은 패턴을 그 아래 거버넌스에서 확인한다. 독립적 이사회도, 상시 감사 규율도, 문서 이력도, 정리된 지식재산권 소유도 없다. 층위는 달라도 형태는 똑같다. 국내 기준은 제 시스템 안에서는 앞뒤가 맞고 잘 돌아간다. 그러나 다른 역사가 세운 글로벌 기준과 부딪치는 순간, 둘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번역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번역은 어디선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양쪽 끝은 이미 뚜렷하다. 한쪽은 그 회사가 실제로 발 딛고 자라 온 한국의 거버넌스 관행, 다른 한쪽은 여러 나라 제도가 뒤섞이되 어느 하나에도 매이지 않은 글로벌 기준이다. 해외 투자자가 제 의무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사이를 잇는 장치다. 회사의 거버넌스를, 거래가 버텨 낼 시간 안에 한 기준에서 다른 기준으로 옮기는 방법 말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그 장치를 오직 ‘없다’는 사실로만 보여 줬다. 컬리가 마감에 쫓겨 그것을 만드느라 쓴 넉 달, 2년 전 쿠팡이 같은 압박 속에 계약 차원에서 쓴 넉 달이 그 증거다.
이 시리즈가 살펴본 모든 국경 간 투자에서, 자본이 움직이려면 그 전에 누군가 어디선가 이 번역을 끝내 놓아야 한다. 미리 돼 있지 않으면, 회사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비싼 값을 치르며, 정작 이미 끝나 있어야 할 거래 도중에 만든다. 미리 돼 있으면, 그 일은 거래의 급한 일정에서 비켜나 조용히 이뤄진다. 그러면 두 회사에서, 같은 문제의 서로 다른 두 층위에서 각각 재어 본 그 넉 달은 아예 생기지 않는다.
이토록 구체적이고, 이토록 되풀이되며, 이토록 값비싼 격차가 언제까지나 방치될 리 없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번역은 이뤄지고 있다. 이 시리즈의 남은 글들은, 어느 정도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Sources:
박희덕(Park Hee-duk), 인터뷰·강연 시리즈, 2022~2025년 8건. 한국 채널(이해, 야단법석, VC인터뷰)의 V1~V3·V5·V6 영상 인터뷰. 통합 분석 자료 별도 보관.
박희덕, V6 거버넌스 사례 연구(마켓컬리) 및 종합 결과 메모, 2026년 3월 17일: 별도 보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standard venture investment contracts) 개정판, 중소벤처기업부·한국벤처투자(KVIC)가 「벤처투자 계약문화 발전 선포식」에서 발표, 2026년 6월 30일. 3년 만의 개정으로 투자계약서와 주주간계약서를 분리했고, 주주간계약서에서 투자자 전원의 만장일치 동의를 같은 라운드 안 3분의 2 이상의 집합적 동의로 대체했다. 강제 규칙이 아닌 표준계약서로, 채택은 자율이며 그 이후 체결된 계약에 적용된다.
한국 상법 개정(이사 충실의무 확대 /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 2025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 통과, 2025년 7월 22일 시행.
고지: 이 글은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자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은 독자적인 조사와 자격을 갖춘 자문가와의 상담을 바탕으로 내려야 한다.
세인트 클레어 소개: 세인트 클레어(Saint Clair)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경 간 투자사다. 2016년 이래 자본이 오가는 인프라까지 직접 구축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