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받는 명함의 이메일은 대기업이든 관공서든 개인 주소인 경우가 많다. 골뱅이 앞 아이디는 정작 이름이 아닐 때가 잦다. 외국인의 눈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이유는 생각보다 평범하고, 그 관행이 놓치는 국제 표준은 뜻밖에 간단하다. 실제로 쓰는 자기 이름이다.
세인트 클레어 · 마켓 인텔리전스 | 2026년 8월
아직 살아 있는 의례
유럽에서 종이 명함은 거의 사라졌다. 링크드인으로 대신하거나 왓츠앱 연락처를 주고받고, 그것도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의 일이다. 반면 한국에서 명함 교환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격식이라, 두 손으로 건네고 두 손으로 받아 그 자리에서 한 번 읽는다. 그만큼 명함은 첫인상을 좌우하는 공식 문서에 가깝고, 거기 담기는 몇 글자는 신중해야 한다.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전하고,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
세인트클레어는 2016년 이래 유럽–한국 회랑에서 수천 장의 명함을 모았다. 그 안에서 되풀이되는 패턴이 하나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회사 도메인 대신 지메일이나 네이버 같은 개인 주소를 적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나 젊은 창업가에 국한되지 않고, 연령과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관공서도 예외가 아니다. 코리아프로는 2024년, 공무원 명함에 개인 지메일이 적혀 있고 없으면 손으로 적어 주기까지 하는 일이 보안 우려를 부를 만큼 흔하다고 전했다. 게다가 골뱅이 앞 아이디는 정작 사람 이름이 아닐 때가 많다.
왜 개인 주소인가
이유는 대개 단순하다. 편의의 문제다. 네이버는 대다수 한국인이 일상과 휴대폰 속에서 늘 쓰는 포털이자 메일인데, 관공서와 회사의 공식 메일은 번거롭다. 코리아프로가 정부 부처에서 짚은 마찰도 바로 이것으로, 공식 시스템이 불편하니 잘 되는 계정으로 손이 간다. 게다가 개인 주소에는 회사를 옮겨도 그대로 남는다는 실질적 이점이 있다. 한국의 직장 이력은 자주 움직이고, 회사가 준 주소는 떠나는 날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개인 주소는 습관과 인프라의 문제이며, 이를 진지함의 결여로 읽으면 사람을 잘못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름이 없다
회사 도메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디는 또 다른 문제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좀처럼 이름이 아니어서, 여권에도 사원증에도 없는 대니얼이나 제니가 오르고, 숫자라면 대개 태어난 해나 생일이며, 천사로 읽히는 1004 같은 숫자놀이도 흔하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음식, 꽃, 오래 응원해 온 가수가 그대로 아이디가 되기도 한다. hi나 love처럼 단어 하나가, 혹은 ‘I ain’t alone’을 붙여 쓴 문장이 앉기도 하고, 한글을 영문 자판 그대로 쳐 비밀번호처럼 보이는 문자열이나 자기 휴대폰 번호가 오르기도 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손에서 고른 만큼, 뜻이 엉뚱하게 읽히거나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뜻을 담기도 한다.
외국인의 눈에는 이것이 낯설다. 명함은 공식 문서인데, 거기에 사적인 취향이 얹히면 이상하고 때로는 프로페셔널하지 않게 비친다. 그래서 이 반응은 에둘러 넘기기보다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낫다.
어쩌면 이름이 빠지는 더 깊은 이유는, 우리가 서로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부장님, 대리님, 프로님이 이름을 대신하니, 자기 이름을 앞세우는 일 자체가 익숙지 않다. 그런데 국제 무대의 기준은 오히려 그 반대여서, 실제로 쓰는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쓰면 그만이다. 그 간단한 기준에서 보면, 이름이 빠진 아이디는 그 자체로 눈에 띈다. (아이디 예시는 모두 설명을 위한 것이며, 특정인의 명함에서 옮긴 것이 아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아래에는 아무도 짚지 않는 공백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메일이든 아이디든, 직업적 정체성을 어떻게 국제 기준에 맞추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영어가 아직 완전히 몸에 배지 않은 탓도 있다. EF 영어능력지수 2025년판에서 한국은 세계 48위, ‘보통’ 등급이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장식처럼 다루기 쉽고, 장식으로 다루는 순간 그 간단한 기준을 놓친다. 콩글리시나 비밀번호 같은 문자열, 실생활에서 쓰지도 않는 영어 이름이 명함에 오르는 순간, 형식과 실질은 어긋난다.
그러니 걸려 있는 것은 국제 기준이다. 멋이나 서구화의 문제로 읽기 쉽지만, 무대가 요구하는 것은 형식과 실질의 일치다. 이메일 주소 하나가 인상을 실제로 바꾼다. 리버모어(Livermore)와 동료들이 2016년 미국 대학 구성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정식 이름과 소속 도메인을 쓴 주소가 가장 높은 신뢰를 얻었고, 별명이나 상용 메일 계정은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앞에 놓인 것을 읽는다는 것
자본 외교(Capital Diplomacy)는 프로페셔널의 수입된 정의를 들이대기보다, 상대를 그의 방식대로 읽는 데서 시작한다. 명함을 받아 드는 쪽에 필요한 것은, 회사 도메인이 없다는 이유로 상대의 무게나 직급을 낮잡지 않는 눈이다. 개인 지메일 하나로 진지함을 의심한다면, 한국에서 지극히 흔한 관행을 오독하는 셈이다. 취미가 담긴 아이디라면 오히려 관계로 들어가는 낮은 문턱이 되어, 한마디 건네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없고 대체로 반갑게 받아들여진다.
명함을 건네는 쪽의 몫은 반대편에 있다. 국경 밖에서 신뢰는 명함 위의 정체성과 실제로 살아가는 정체성이 맞아떨어질 때 생기고,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만으로 그 거리는 대개 좁혀진다. 결국 그 읽기는 양쪽 모두의 일이다. 받는 이는 몇 글자에서 상대를 읽고, 건네는 이는 그 몇 글자에 자기를 정확히 담는다. 국제 무대의 신뢰는 그 두 정확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출처 및 근거
코리아프로(Korea Pro), 2024, “Korean government’s widespread use of personal emails poses security risks” — 관공서 명함의 개인 지메일, 번거로운 공식 소프트웨어, 피싱 노출. https://koreapro.org/2024/03/korean-governments-widespread-use-of-personal-emails-poses-security-risks/
EF 영어능력지수(EF EPI) 2025 — 한국 세계 48위, 522점, ‘보통’ 등급. https://www.ef.com/wwen/epi/regions/asia/south-korea/
Livermore, Scafe & Asher (2016), “The Impact of E-mail Address on Credibility,” 『Journal of Academic Administration in Higher Education』 — 정식 이름+소속 도메인 주소가 신뢰도 최상, 별명·상용 메일 계정은 신뢰도 저하. https://files.eric.ed.gov/fulltext/EJ1139123.pdf
네이버(Naver) — 한국의 지배적 포털·메일 서비스.
세인트클레어 유럽–한국 회랑 현장 관찰(명함 수천 장 수집), 2016–2026.
편집 주(註): 중심 관찰(명함의 개인 이메일과 이름 아닌 아이디)은 세인트클레어의 현장 패턴이며, 코리아프로가 관공서 명함에서 같은 관행을 독립적으로 전한다. 이 관행 자체를 다룬 학술 연구는 아직 없다. 직함 호칭·’1004’ 같은 예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상식이며, 통계·사례는 각 출처에 귀속되고, 아이디 예시는 설명을 위한 것으로 특정 명함에서 옮긴 것이 아니다.
고지: 이 글은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 자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은 독자적인 조사와 자격을 갖춘 자문가와의 상담을 바탕으로 내려야 한다.
세인트 클레어 소개: 세인트 클레어(Saint Clair)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경 간 투자사다. 2016년 이래 자본이 오가는 인프라까지 직접 구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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